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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회복지실천의 역사적 발달과정

국내산 뉴 2012. 12. 9. 13:57

제2장

사회복지실천의 역사적 발달과정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실천의 개념과 기술 등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유입되어 형성되었다고 볼수 있다. 미국의 사회복지 실천기술 및 형태는 영국의 산업혁명 후기에 나타난 각종 사회문제에 민간인들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싹튼 영국의 자선활동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먼저 사회복지실천이 시작된 영국 및 미국에서의 사회복지실천 발달과정을 살펴보고 나중에 한국에서의 발달과정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1. 서구 사회복지 실천의 발달과정

1) 자선조직협회의 활동

1800년대 초부터 영국에서 사회복지기관들이 하나 둘씩 출현하였다. 당시 사회복지기관들은 대개 개인이나 민간단체들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주로 성직자들이 운영 및 활동을 주도했고 거기에 종교단체들이 참여했다. 그 후 1900년대 초반까지 빈민을 위한 서비스는 이들 성직자들과 거기에 가세한 부유한 자선가들에 의해 제공되었다.

18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민간구제기관들이 출현하기 시작 했는데, 이들의 활동 목적은 실업자, 빈민, 환자, 신체·정신장애인, 고아 등을 돕는 것이었다. 민간구제기관들은 빈민들의 행동습관이나 환경을 조사했고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자립계획을 제시하고 경제활동을 지도하였다.

영국 최초의 자선조직협회는 1869년 런던에서 설립되었고, 미국 최초의 자선조직협회는 1877년 뉴욕 주의 버펄로에 세워졌다. 그 후 미국에는 많은 자선조직협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선조직협회의 직원들은 주로 자원봉사자들이었으며 이른바 ‘우애방문단’ 이라 불렸다. 우애방문단은 주로 중산층의 부인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로서 빈곤가족을 방문하여 가정생활, 아동에 대한 교육, 가계경제 등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였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구성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가족들을 도덕적으로 꾸짖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나중에 가족 사회사업 담당 복지사 들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자선조직협회는 사랑에 기초한 종교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빈곤의 성격과 인간성에 대해서는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선조직협회에 소속되어 있던 우애방문단은 1900년대부터 점차 보수를 받는 정식직원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2) 인보관운동

인보관운동은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갖고 있는 지역사회에 직접 나가 빈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지역사회 환경의 개선 및 개혁과 빈민의 도덕적 교화에 힘써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미국의 인보관 운동의 주요 활동무대는 미국 사회에 갓 도착한 빈민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인보관 운동 참여자들은 빈민 지역의 주택개선, 공중 보건 향상, 사용자에 의한 빈민 착취의 방지 및 해결 등 제반 사회문제에 대한 집합적이고 개혁적인 해결을 강조하였고 그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였다.

3) 전문적 교육의 등장

자선조직협회에 유급 근무자들이었던 협회 전문 인력들은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고 조직·관리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기준과 지침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리치몬드는 1897년에 열린 자선 및 교정학회에 참석하여 전문교육을 담당할 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1898년에 미국 최초의 사회복지 전문 인력 훈련과정이 뉴욕 자선조직협회에 의해 뉴욕 자선학교의 후원 하에 개설되었다.

뉴욕 자선학교는 1904년에는 1년짜리 프로그램을, 1910년에는 2년짜리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리치몬드는 뉴욕 자선학교에 겸임 교수로 출강하면서 실무에서의 경험을 정형화된 교육으로 변환 시키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뉴욕 자선학교는 후에 뉴욕 사회복지대학으로 발전되었고 1962년 이후로는 콜럼비아 대학교 내의 사회복지대학 으로 발전하였다. 1907년에는 시카고 대학에 사회복지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 1919년 당시 미국에서는 17개의 사회복지대학 이 생겼으며 이 당시 학생들은 대부분 사회복지실천현장에 근무하면서 공부하는 시간제 등록 학생들이였다. 1920년대에 들어가면서 현장 중심적인 교육과 시간제 등록 교육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연중 전일제 수업을 규정한 석사 과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00년에 필라델피아 자선조직협회 의 총 책임자가 된 리치몬드(1917)는 그간 자신 및 동료들의 사회복지실천 활동내용 및 활동과정을 종합하여 1917년에 사회진단 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사회복지 실천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최초로 체계화한 책이다.

문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개입계획단계, 그리고 실행단계 등 리치몬드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한 사회복지 실천 과정은 지금도 사회복지실천 과정에서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리치몬드(1922)는 개별실천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발표했다.

4사회복지실천 초점의 이동

1920년대에 들어서 프로이트의 정신 역동학 이론이 유럽을 비롯한 서양의 학문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성격발달과 문제행동에 관한 프로이트 이론은 특히 사회복지 실천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트 이론의 강력한 영향과 더불어 초기 사회복지사들 활동의 장이 병원 이였음 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실천의 초점이 개인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의료사업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들은 환자의 신체와 정신적 건강을 해치게 만든 보다 큰 사회적 맥락, 즉 주변 환경의 성격, 대인관계의 성격, 지역사회의 생활양상 등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 시야에서 수집하여 의료팀에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마이어 와 같은 정신과 의사는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지역사회에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하였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복지사들을 그들의 귀중한 파트너로 삼고 활동한 반면, 일부 다른 의사들은 사회복지사의 관점과 활동 내용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1910년 이후부터 발생하기 시작된 정신위생운동 으로 말미암아 사회복지실천 인력들은 정신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지역사회환경이 차지하는 비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개인의 행동은 환경의 압력과 어울려 환경이 가져다주는 긴장과 개인적 속성이 상호작용하여 표출되는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사회복지사들은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과 지역사회 내에서 환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지도하였다.

5) 진단주의와 기능주의의 갈등

1930년대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중심으로 사회복지실천을 행하는 진단주의 학파와 랭크의 이론을 중심으로 사회복지실천을 행하는 기능주의 학파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은 과거에 대한 분석을 통한 진단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는데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기능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로는

타프트, 로빈슨, 스몰리, 등을 들 수 있다.

6) 집단사회 사업의 발달

집단사회 사업이 개별사회사업과 함께 사회복지 실천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이후였다. 만들과 그리기 등을 가르치는 사람들로 여겨 1921년에 형성된 미국 사회복지사 협의회에 가입시키지 않았다가 1937년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집단에 합류하도록 하였다. 미국의 사회복지사 전국대회에 집단 사회사업 부분이 생겨난 것은 1935년이었다. 1936년에 집단사회사업 연구전국협회가 결성되었고 이것은 1946년에 집단사회사업협회로 발전되었다.

1945년 이후 정신병원들에서 집단사회사업을 실시하는 경우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아동상담소에서도 집단사회사업이 많이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개별사회사업가가 가족에 개입하여 자족구성원들의 의사소통기술, 의사결정과정, 사회기술 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개입을 집단 형태로 하기 시작하였다.

7)사회복지실천 초점의 재이동 및 실천 모델의 개발

1960년대로 들어가면서, 사회복지사들의 개입방향은 다시 사회 변화, 그리고 사회적인 접근 쪽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을 거치면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단순한 언어교환을 통해서 이루에지는 개인에 초점을 두는 방식의 사회복지실천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믿음이 확신되었다.

1979년과 1980년에는 임상사회사업의 실체를 규정하는 작업이 NASW를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공통적인 지식기반, 실천방법, 실천형장, 가치와 기술 등에 대한 합치된 정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현재의 사회복지실천은 사회개혁과 인간 개인의 변화

모두에 초점을 둔 접근을 하고 있다.

2 한국사회복지 실천의 발달과정

1)외원단체의 활동과 그 영향

(1)외원단체협의회(KAVA)의 탄생

우리나라에 미국식 사회복지실천 방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초라고 볼 수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인간생활의 황폐 현상에 개입하고자 많은 외국 민간원조단체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국전쟁 이전인 미군 정기에도 전쟁 이재민과 월남 동포들의 구호를 위해 외국 자선단체들이 한국을 찾았었다 하지만 외국 원조에 의한 사회복지실천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한국전쟁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발생된 전쟁난민 구호 활동을 위해 국제연합(UN)의 요청에 의해 각국의 외원단체들이 구호물품이나 성금을 한국으로 보내주거나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구호 사업을 지원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전세가 호전되어 서울이 수복되면서 1954년 4월에 총회를 열어 정관을 채택하였다

이 당시 등록된 외원단체 수는33개였다. 카바등록 단체의 수는 1960년대에는 최고 123개 까지 증가하였다가 197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와 같이 전쟁의 혼란 중에 출범한 카바는 1970년대 초반까지 약 15년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전후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정부는 전후 복구 사업에 이어 경제개발 계획 추전으로 사회 복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리 정부보다 더많은 재원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펼치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기에 카바는 제2의 보건 사회부 라는 별명도 들었다. KAVA에 가입하지 않은 채 활동한 외원단체의 수도 많았다.

(2)KAVA 및 회원단체들의 활동 내용

KAVA는 일차적인 원조기관이 아니었다. 원조기관들의 연합체로서 KAVA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였다

1정보교환과 사업의 평가 계획

각 단체가 얻은 경험과 의견의 교환

한국에서 요청되는 원조의 파악, 그 요청에 따른 각 단체의 사업계획

2사업의 연락과 조정

각 회원단체의 사업을 소개함으로써 그 노력의 중복을 감소시킴

필요에 따라 각종 위원회 등을 통해 한국정부 및 한국사회단체와의 유대도모

3단체교섭

합동조사연구: 합동으로 위원회 등을 통해 사회문제의 조사연구와 그해결책 강구

조사연구의 결과 정치나 기타 기관에 교섭이 필요한 경우 단체적으로 접근

(3)외원단체의영향

이러한 외원단체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만일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그 당시에 전쟁고아, 미망인, 이산가족, 부랑인, 무주택자, 성매매 여성 등 수많은 요 보호자 들에 대한 외원단체들의 구호활동이 없었더라면 요 보호자 들이 겪어야할 고통은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며, 그로인해 파생된 사회적 문제들을 감당해야 했던 우리정부의 부담은 막대하였을 것이다.

외원단체 활동이 한국의 사회 사업발전에 끼친 영향에 대해 최원규는

1한국의 사회사업이 종교와 밀접한 관련하여 전개되도록 하였고

2한국에서 전문 사회사업이 시작되도록 촉발하였으며

3시설중심의 사회사업이 발전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고

4한국의 사회복지가 거시적인 사회정책보다는 미시적인 사회사업 위주로 발전하게끔 하였으며

5 사회사업을 구호사업 또는 자선사업과 같은 것으로 한국인들이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했고

6 외원단체의 철수에 따라 외원에 크게 의존하던 한국의 민간 사회사업 부문이 정부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민간사회사업 부문이 정부 통제 하에 편입되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정리하였다.

(4) 외원단체 활동의 계승

외원단체들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모든 사업 을 완전히 종결하고 철수한 단체도 있고, 사회사업을 중단한 채 본래의 목적인 선교 사업을 위해 변신한 단체도 있으며 교육 및 의료 사업으로 전환하여 토착화한 단체들도 있다. 하지만 일부단체는 외원단체에 뿌리를 두고 그 정신을 이어받으며 새롭게 변화하여 지속적으로 예전의 사회복지사업을 계승 발전시켰다.

1기독교아동복지회

CCF의 설립은 당시 중국아동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하고 있던 중화아동복지회의 해외 사업본부 홍콩주재 책임자였던 밀스 목사가 1948년 10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3개의 아동복지 시설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돕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72년 법인의 명칭을 한국 어린이 재단 으로 변경하여 사용하다가 1994년에 다시 한국복지재단으로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CCF는 1970년대부터 철수계획을 세워서 단계적으로 외국 지원을 서서히 축소해가면서 국내 CCF 한국지부를 자생력을 키워가다가 결국 38년간의 외원을 완전히 종결하고 1986년에 국내순수 민간기관으로 거듭 태어나면서 국내 독자적인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1986년에는 어린이 찾아주기 종합센터를 개설, 미아 찾아주기 사업을 전개하여 지금까지 약 3000여 명의 아동을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냈고,

1997년부터는 KBS와 공통으로 사랑의 리퀘스트 모금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전국 가 지부, 복지관, 장애인시설, 특수학교, 가정위탁지원센터, 아동학대예방센터 등 산화기관이 60개, 전체직원이 700여 명이 되는 국내 최대의 사회복지 기관으로서 외원을 통해 한국의 토착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관이라 할 수 있다.

2선명회

한국월드비전은 한국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고아들과 미망인들을 돕기위해 미국의 밥필얼스 목사와 한국의 한경직 목사에 의해 1953년 설립되었다. 월드비전은 1991년에 수혜국 위치에서 지원국 지위로 전환되어 사랑의빵 저금통 모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모금캠페인을 통해 2004년에는 약 220억원 을 모금했다 월드비전은 2005년 초 현재 전국 각지에 11개 종합 사회복지관을 비롯해 장애인 복지관, 청소년 수련관, 아동학대예방센터, 음악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월드비전 어린이합창단이 1960년 창단되어 1978년 영국 BBC 방송 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 동양권 국가로는 최초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일류합창단으로 자리 잡았다.

3홀트아동복지회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5년 6월 목재사업을 하던 미국인 해리 홀트 씨가 한국의 전쟁고아와 혼열 아동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

1956년 홀트는 국내에 해외 양자회를 설립하고, 그 해 10월 미국에는 Holt Adoption program,Inc를 설립하여 해외입양을 시작하였고 1957년부터는 국내입양을 시작하였다.

1962년부터는 입양대상 아동 중 장애로 인하여 입양이 불가능한 아동들을 보호하면서 재활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장애아동을 교육을 실시하였다. 1972년 7월에 법인명칭 을 홀트 아동복지 회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1975년에는 대한기독교개혁선교회를 합병하였다.

4한국지역 사회복리회

1953년에 세이브더칠드런 영국, 캐나다, 스웨덴, 미국 등이 한국전쟁 이후 아동과 미망인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서울, 부산, 마산 등지에서 미망인과 고아를 돕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는 전후 아동과 미망인을 위한 의료 및 교육 보호 훈련 지원사업 등에 치중하다가 1960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는 전국의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새마을 운동사업 등 지역사회개발사업을 주로 실시하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를 통합하여 한국 내 법인을 설립하였다. 1981년에는 동양에서는 첫 번째로 새이브더칠드런 연맹의 회원국이 되었다. 그간 미국 세이브더칠드런 으로부터 일부 재정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1998년부터는 한국이 충분히 독립하여 운영 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재정적인 지원이 종결되었다.

1980년 사단법인 한국지역 사회복리 회 로 변경 등록 했다가 1991년에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하였으며 2002년에는 다시 사회복지법인 한국 세이브더칠드런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 후 2004년 6월 15일 사회복지법인 한국 어린이보호재단과 합병하여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 연맹의 회원국들이 사용하는 세이브더칠드런 이라는 명칭과 로고뿐 아니라 사명, 비전 및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5 캐나다 유리테리안봉사회

캐나다 유니테리안 봉사회는 1945년에 조직된 외원기관으로서 국제연합 (UN)의 초청으로 1952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전쟁고아, 미망인 및 결식아동들을 구호를 위하여 활동했다.

1956년부터는 시설아동과의 결연을 통해 후원활동을 전개했으며, 1962년 부터는 목포 인천 이천 마포 등 4개 지역에서 사회복지관사업을 시작하였다. 1965년부터는 시설아동중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복귀가 어려운 아동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지원과 상담을 실시해 궁극적으로 아동들이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거택 구호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195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문교육을 받은 전문사회사업가를 채용하여 사회복지사업을 전문화하는데 공헌하였다. 영세 극빈가정을 위한 가정복지 사업, 직원 자질 향상을 위한 직원훈련 사업 등을 전개해왔다.

이 단체는 1977년에 그 명칭을 사회복지법인 한국봉사회로 바꾸고 6개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면서 국내 결연 사업을 본격적 전개하기 시작했다.

1979년에 캐나다로부터 원조는 완전히 중단되고 한국봉사회는 독자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6 메노나이트 중앙재단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이후 메너나이트 중앙재단은 우리 사회의 연로 및 식량부족, 엄청난 실업, 해체가정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가 1962년에 MCC 한국지부를 대구에 설립하였다. 1962년3월에는 아동을 고아원에 수용해 양육하는 것보다는 가정에서 양육되도록 돕자는 정신으로 재가 아동지원 사업 사업을 본격화 하였다.

1964년에는 지역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구지역 최초로 동구 신천동에 지역회관을 설립하는 등 지역복지조직체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1970년 6월에는 대구에 다른 복지기관이 없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인만으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사단법인 대구가정복지회를 설립하면서 MCC의 재가 아동지원 사업 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1에는 대구가정복지회가 사단법인에서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되었고 2000년에는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가정복지회는 그 사업 영역을 넓혀서 대구지역을 벗어나 울산 지역 회와 사무소를 설치하였고, 2001년에는 기존의 구미사무소를 경북지역 본부로 승격하였다.

7스웨덴아동구호연맹

스웨덴아동구호연맹은 당초 1952년 영국아동구호재단을 통해 사업을 전개하다가 1966년부터 독자적으로 당시 긴급했던 결핵 퇴치와 영아보건 등 의료사업과 기타 구호사업을 전개해 왔다. 반면, 한국아동복지회는 1969년 한서기술학원 으로 시작하여 1971년에 사단법인 한국아동복지회로 등록하고 74년에 사회복지 법인으로 전환하였다.

1976년에 스웨덴 아동구호연맹에서 한국아동복지회에게 대지구입비 일부를 지원하고 지역주민들의 찬조를 얻어 부산 보수동에 자체회관인 아동복지회관을 건립하였다. 스웨덴 아동구호연맹 에서는 한국아동복지회가 자체건물도 갖게 되고 조직도 견실하여 독자적인 사업수행능력이 있다고 인정하여 연맹이 한국에서 실시하던 모든 사업 을 한국 아동복지회 측에 인계하고 국내에서 철수하였다.

8 양친회

양친회 는 1937년 스페인 내란 때부터 시작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동들과 그 가족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자립을 돕는 순수한 민간 원조단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에 사업을 시작하였다.

양친회 는 1974년에 회복지법인 양친사회복지회로 그명칭 을 바꾸고 의료사업, 장애인재활사업 노인복지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양친회는 한국 내 사업을 완전 종결하기에 앞서 1977년에 탁아소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500여 세대의 극빈가정에게 도움을 제공하던 장소인 성남시 금광동에 양친희병원 을 설립 개원하여 운영해 오고있다. 성남중앙병원은 2005년 초 현제 300병상 교모의 종합병원으로서 지역사회 저소득 주민들을 위한 보건 의료사업에 힘쓰고 있다.

1984년부터 양친사회복지회 는 장애아동 재활사업을 위해 소망재활원을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1997년에는 노인들을 위해 정성노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9태화복지재단

태화복지재단은 외원단체로 분류되지 않으나 외국선교기관의 지원으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최초의 사회복지관인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다. 재단은 1979년에 기독교감리회 사회사업유지재단이란 명칭으로 법인 인가를 받은 후 1984년 사회복지법인 감리회 사회복지관재단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2004년에는 다시 태화복지재단으로 변경하였다.

2)제도적발전

사회복지실천과 관련된 제도 면에는 꾸준한 발전이 있어 왔다.

1947년에 최초의 사회사업학과가 이화여대에 설치되었으며 1953년에는 중앙신학교에 사회사업학과가 설치되었다. 이후 1959년에는 서울대 대학원에 사회복지 전공이 개설되었다.

1960년대에는 중앙대, 한국사회사업대학, 성심여대, 서울여대, 숭실대 ,부산대, 등에 사회복지학과가 설치되었다. 1970년대부터 제도적 접근의 필요성과 사회사업이라는 용어에 대한 국민들의 주정적 이미지 극복 수단으로 사회사업학과가 사회복지학과로 바뀌는 경향이 나타났고 동시에 거시적 실천의 도입과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2004년 현제 전국에 전문대학, 대학, 대학원에 사회복지학과 및 사회복지 관련학과 를 설치한 대학이 80여개를 상회한다.

1970년에 제정된 사회 복지사업법 에 최초로 명시되었다. 1983년 5월에 사회복지사 업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제도로 변경되었다. 1996년 부터는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을 제고하고자 한국사회복지사협의회 주관으로 임상사회복지사 자격제도가 실시되었다.

1998년 부터는 그 명칭이 전문사회복지사 제도로 바뀌어 6개의 전문분야로 구분하여 시행되다가 2000년의 시행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또한 1996년부터 정신장애인 들 의 사회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학문분야의 전문가가 합동으로 지역사회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정신보건 사회사업학회가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를 배출하고 있다.

1997년 7월에는 사회복지사업 법 1998년에는 사회복지사업법시행령 과 사회복지사업 시행규칙 등이 개정되어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이 신설되었다. 사회복지사 1급자격 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국가시험을 합격해야하며 사회복지사 2,3급은 별도의 국가시험 없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된다.

2005년도에는 제1회 학교사회복지사 자격시험이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한국학교사회복지학회와 한국 학교사회복지사협의회 등의 공동 주관 하에 실시 되었다.

3. 한국 사회복지실천현장의 과제 및 방향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자활사업을 시행하게 되어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의 자활을 위해 안정된 일자리 제공 자활의욕 고취 및 자활능력 배양이 사회복지 실천 영역으로 추가되었다. 노인수명의 증가와 출산기피현상으로 인해 노인문제가 사회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각되었다. 청소년의 문제도 심각해져서 학교사회사업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탈북자의 국내유입이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정착 및 사회적응 지원서비도 요청되고 있다.

2003년 6월 부분 개정된 사회 복지사업법에 따라 지역사회복지협의체가 생겨났고 여기서 지역단위 복지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례관리를 실천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사례관리 방법의 실천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현상과 사회복지 실천현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실천현장의 과제와 방향을 제시해본다

첫째: 현재의 사회복지기관들이 보다 전문화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둘째: 사회복지 기관에 대한 재정지원 창구를 다양화함으로써 사회복지기관의 종류별, 지역별로 특성화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사회복지기관 간 협력체제 및 연결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넷째: 우리의 상황과 전통, 가족제도 사회제도에 걸맞은 사회복지프로그램을 개발 적용해야 할 것이다. 노인부양문제, 여성취업, 아동보육 저출산문제, 가족해제현상, 가정내 폭력문제 등은 우리 사회의 전통과 사회제도 내에서 출현한 사회복지 ns제 현상이다. 따라서 개입방법을 모색함에 있어서도 서구의 것을 억지로 대입 적용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한국 사회복지실천 현실에 대한 분석과 그에 바탕을 둔 이론과 모델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해외지원사업보다 체계적 조직적 전문적으로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절차에 대한 대책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대외적으로 복지 수혜국에서 복지 후원국으로 전환해가는 시점에 있다.

여섯째: 사회복지실전 영역이 전문화되고 우리 고유의 토착적인 사회복지실천 방법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에 걸맞은 사회복지사들의 위상 강화와 처우개선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엄명용 김성천 오혜경 윤혜미 (2009) <개정판> 사회복지실천의 이해. 서울:학지사

출처 :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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